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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인생 이야기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시선이 닿는 곳에 피어나는 영원한 사랑의 불꽃

by 영화감있게 살자 2025. 10. 11.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시선이 닿는 곳에 피어나는 영원한 사랑의 불꽃

서론: 인상 평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저의 감각을 지배하며, 제가 경험했던 그 어떤 멜로 영화보다도 깊은 인상과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겼습니다. 이 영화는 18세기 프랑스라는 고전적인 배경 속에서, 사랑과 욕망, 예술과 여성의 연대라는 보편적이면서도 파격적인 주제를 너무나도 우아하고 섬세하게 그려냈죠.

 

흔히 우리가 기대하는 격정적인 대사나 시각적인 스킨십 없이도, 그저 서로를 응시하는 눈빛과 조심스러운 손길, 그리고 침묵 속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선만으로도 사랑의 본질을 폭발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치 캔버스 위에 한 겹 한 겹 색을 올리듯 쌓아가는 감정의 서사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처럼 남아 진정한 '걸작'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했습니다.

 

줄거리

영화는 18세기 후반, 프랑스 브르타뉴의 고립된 섬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 분)는 시대를 앞서가는 여류 화가로,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 분)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외딴 섬으로 오게 됩니다. 엘로이즈는 수녀원에서 나와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대신 결혼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초상화 그리기를 거부합니다. 이 때문에 마리안느는 엘로이즈가 모르게, 마치 동행인이자 산책 친구처럼 그녀를 관찰하고 기억하여 초상화를 완성해야 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시선이 닿는 곳에 피어나는 영원한 사랑의 불꽃

 

마리안느는 낮에는 엘로이즈와 함께 섬을 거닐고 대화를 나누며 그녀의 표정, 걸음걸이, 습관 등 모든 것을 세밀하게 관찰합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몰래 숨어서 촛불 아래 붓을 들어 엘로이즈의 모습을 화폭에 담습니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가 화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교감하며 점차 깊은 우정과 함께 미묘한 끌림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마리안느가 완성한 첫 번째 초상화를 본 엘로이즈는 그림이 자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혹평합니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가 그림에 담기길 거부한 내면까지도 읽어내지 못했음을 인정하며, 자신이 화가임을 고백하고 그림을 파괴합니다.

 

모든 것이 드러난 후,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 자신을 다시 그려달라고 요청하며 이제는 자발적으로 모델이 되어줍니다. 모델과 화가의 관계가 대등한 관계로 바뀌는 순간, 두 사람은 더욱 깊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응시하며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함께 산책하고,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며 짧지만 강렬한 사랑의 시간을 보내죠. 하녀 소피까지 세 여성은 당시 여성들이 겪는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위로와 연대를 건네며 특별한 여름을 보냅니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완성하고,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 작은 자화상을 그려 선물합니다.

 

이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헤어집니다. 영화는 시간이 흘러 마리안느가 우연히 오케스트라 공연장에서 엘로이즈를 발견하고, 그녀가 자신의 기억 속 '어느 순간'을 간직한 채 강렬한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통해 이들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마무리됩니다.

 

느낀점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시선'이라는 행위가 이토록 섬세하고 강력한 사랑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단순히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내면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고', 엘로이즈 역시 마리안느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응시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선 상호적인 이해와 교감의 증표였습니다. 서로에게 시선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가장 뜨거운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로맨스는 그 어떤 육체적인 접촉보다도 강렬하고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시선이 닿는 곳에 피어나는 영원한 사랑의 불꽃

 

이 영화는 또한 '여성 연대'의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우아하게 그려냈습니다. 마리안느, 엘로이즈, 그리고 하녀 소피가 함께 낙태의식을 치르는 장면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서로를 보듬고 아픔을 나누는, 강렬하면서도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남성이 배제된 공간에서 여성들이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며 교감하는 모습은 제가 느꼈던 사랑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혀주었습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연대감은 단순히 외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통해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듯했습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의 재해석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백미였습니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각자의 입장에서 이 신화를 해석하며 사랑과 이별의 의미를 되새기죠. 저 역시 마지막 순간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의 선택이 단순히 망각이나 의심이 아닌, 에우리디케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사랑의 행동일 수 있음을 깨달으며,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별 후에도 영원히 존재하는 사랑의 가치에 깊은 공감을 보냈습니다.

 

내가 감독이라면 이렇게 끝내겠다

셀린 시아마 감독님의 엔딩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의 마지막 모습을 공연장에서 몰래 관찰하며, 음악을 통해 그들의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는 모습으로 깊은 여운과 절절한 그리움을 남깁니다. 이 엔딩은 그 자체로 완벽한 슬픔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만약 감독으로서, 그들의 사랑이 단순한 '기억'을 넘어 어떤 '영향'을 남겼음을 보여주는 엔딩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마리안느가 공연장에서 엘로이즈를 발견하고, 그녀가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들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장면까지는 동일하게 가져갑니다. 마리안느의 시선은 엘로이즈의 뒤통수, 그리고 그녀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통해 엘로이즈 역시 그들의 시간을 기억하며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카메라가 서서히 마리안느의 자리에서 멀어져 나옵니다. 공연장의 복도를 비추다가, 복도 벽에 걸린 그림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 그림은 아마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고 알려진 바로 그 그림이거나, 아니면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그렸던 다른 초상화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림 아래에는 화가 마리안느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그림 옆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이런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엘로이즈, 혁명 시기 프랑스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예술 후원가이자 여성 교육 운동가" (이름과 설명은 가상의 것이지만, 그녀의 예술과 독립적인 삶이 현실에 어떤 흔적을 남겼음을 암시합니다).

 

마리안느는 그 그림 앞을 지나갑니다. 그녀는 그림을 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더 이상 슬픔이나 그리움만이 아닌, 그들의 사랑이 한 여인의 삶을 변화시켰고, 그 영향이 역사에 남겨진 것을 확인하는 듯한 자부심 섞인 미소입니다.

 

그리고 화면은 다시 현재의 파리를 비춥니다. 거리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걷고, 자유롭게 예술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이때, 한 젊은 여성 예술가가 전시회에서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그림 속에는 강렬한 여성의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여성은 아마도 마리안느의 후대 제자이거나, 혹은 마리안느의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누군가일 것입니다.

 

이 젊은 여성 예술가는 마리안느의 화풍과 닮은 듯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여성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피워냈던 사랑과 예술의 불꽃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하며, 개인의 사랑과 투쟁이 역사와 문화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희망적이고 아름다운 여운을 남길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감독에 대해 (셀린 시아마 감독)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시선이 닿는 곳에 피어나는 영원한 사랑의 불꽃

 

제가 생각하는 셀린 시아마 감독님은 '여성 시선(female gaze)'이라는 개념을 영화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섬세하게 구현해내는 데 탁월한 거장입니다. 그녀의 영화는 남성의 시선으로 대상화되던 여성을 주체적인 존재로 세우고, 여성들 사이의 깊고 복합적인 관계와 감정을 누구보다도 진정성 있게 탐구합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보여주듯이 , 그녀는 대사와 설명에 의존하기보다는 인물들의 눈빛, 제스처, 그리고 침묵 속에서 흘러나오는 미묘한 감정들을 통해 서사를 구축합니다. 미술사적 배경과 시각적 미학을 영화의 언어로 능숙하게 활용하며, 모든 프레임을 그림처럼 아름답게 연출하는 스타일리스트적인 면모 또한 두드러집니다.

셀린 시아마 감독님은 단순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넘어, 여성의 주체성과 연대의 가치를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사랑과 자유의 메시지를 던지는, 용기 있고 섬세한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이 영화가 나에게 미친 영향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제게 '사랑의 본질'과 '시선의 힘'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한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며, 그 시선은 상대를 존재하게 하고 스스로를 발견하게 하는 마법과도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가 제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심어주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제 타인을 피상적으로 판단하는 대신, 상대방의 진짜 모습과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려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한 사회의 규범이나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저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을 스스로 응시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불꽃 같은 사랑처럼, 저 역시 진정한 사랑은 기억과 예술을 통해 영원히 타오를 수 있음을 믿으며, 저의 삶에서도 그러한 불꽃을 지펴나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로맨스를 넘어선, 삶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준,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