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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인생 이야기

일본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 시간 속에 박제된 순수한 빛깔의 추억

by 영화감있게 살자 2025. 9. 27.

일본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 시간 속에 박제된 순수한 빛깔의 추억

서론: 인상비평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어도, 우리의 기억 속에 어떤 계절은 유독 선명하게 남아 빛을 발하곤 합니다. 저에게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은 바로 그런 마법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단순히 고등어 통조림 이야기가 아니라, 1986년이라는 특정 시점과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펼쳐진 두 소년의 우정을 아름답게 그려내죠.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잊고 지냈던 유년 시절의 낡은 일기장을 펼쳐든 듯한 아련한 향수에 젖어들었습니다.

 

경제적인 풍요나 자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찬 현대 사회와는 전혀 다른, 소박하지만 그 무엇보다 순수했던 그 시절의 풍경과 아이들의 눈빛은, 제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조용히 일깨워주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시간 속에 박제된, 결코 시들지 않는 여름의 추억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줄거리

영화는 성인이 된 주인공 '쿠보'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고등어 통조림이 담긴 옛 기억을 더듬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야기는 1986년, 일본 시즈오카현의 한적한 마을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요. 낡고 낡은 라디오에서는 팝송이 흘러나오고,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대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는 그런 시절입니다. 소심하고 어딘가 답답해 보이는 '츠요시(어린 쿠보)'와는 달리, 자유롭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친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전학생 '가피'가 마을에 나타나죠.

 

가피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며, 집안 형편 때문에 종종 식사를 고등어 통조림으로 대신합니다. 츠요시는 그런 가피의 상황이 안쓰럽지만, 가피는 오히려 통조림을 '하와이에서 온 맛있는 음식'이라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둘은 곧 특별한 우정을 쌓게 되고요. 어느 날, 가피는 츠요시에게 "여름방학 동안 하와이로 이사 간다"고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며, 그림책에 나오는 환상의 물고기, '니지이로노 사카나(무지개 물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제안합니다.

 

일본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 시간 속에 박제된 순수한 빛깔의 추억

 

이 황당무계한 모험을 위해 두 소년은 하와이 지도를 펼치고 자전거를 타고 바다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예상대로 길을 잃고, 가진 돈은 부족하고, 어른들에게 꾸중을 듣기도 하지만, 이들은 그 모든 과정을 함께 겪으며 웃고, 다투고, 화해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유대감을 깊게 합니다. 특히 이들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고등어 통조림을 함께 나눠 먹는 장면은, 이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순간입니다. 바다에 도착한 두 소년은 비록 무지개 물고기는 찾지 못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여름날의 추억과 변치 않는 우정의 증표를 만들어냅니다. 영화는 이후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 기억이 츠요시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잔잔하게 보여주며 마무리됩니다.

 

느낀점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을 보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로 '시간'에 대한 애틋함이었습니다. 영화는 단순히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1986년 그 시대의 정취와 공기를 온전히 담아내려는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푸른 하늘과 짙은 녹음, 빛바랜 골목길, 그리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까지, 모든 것이 향수를 자극하는 그림 같았어요.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린 시절의 '결핍'이나 '어려움'이, 아이들의 순수한 눈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가피의 어려운 형편도 그의 당당함과 긍정적인 에너지 앞에서 희미해지는 듯 느껴졌어요.

 

두 소년의 우정은 제가 살았던 어린 시절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어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습니다. 별것 아닌 것에 깔깔거리고, 또 별것 아닌 것에 토라지고, 그러다 다시 금세 화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치 않는 우정의 본질을 보여주는 듯했거든요. 고등어 통조림이 단지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비밀스러운 모험'을 채워주는 소중한 상징이 되는 과정도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현실의 문제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직 모험과 우정으로 가득했던 그 여름이, 어른이 된 츠요시의 인생을 지탱하는 가장 굳건한 뿌리가 되었음을 느끼며 가슴이 뭉클해졌어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1986년 여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감독이라면 이렇게 끝내겠다

영화의 실제 엔딩은 어른이 된 츠요시가 가피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며, 지나간 시간의 아름다운 여운을 남깁니다. 제가 이 영화의 감독이라면, 그 아련한 추억의 깊이를 더하면서도 '우정의 불변성'을 시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으로 엔딩을 꾸며보고 싶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츠요시와 가피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가에서 '무지개 물고기'를 찾지 못한 채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그대로 유지합니다. 가피가 "하와이에 가면 꼭 편지할게!"라고 말하며, 해맑게 손을 흔들고 멀어지는 모습으로 장면이 전환됩니다.

 

그다음 화면은 오랜 세월이 흘러 흰머리가 희끗한 '어른 츠요시'가 조용히 앉아 있는 그의 서재나 작업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빈티지한 라디오에서 1986년에 유행했던 팝송을 듣고 있습니다. 그의 눈빛은 아련한 추억에 잠겨 있고요. 그의 손에는 어렸을 적 가피와 함께 봤던 '무지개 물고기' 그림책이 들려 있습니다. 그림책을 가만히 내려놓은 츠요시의 눈가에 작은 미소가 번집니다.

 

그리고는 화면이 츠요시의 책상 위에 놓인, 오래된 편지 한 장을 클로즈업합니다. 봉투에는 낡은 우표와 함께 "츠요시에게"라고 적혀 있고, 발신인은 "하와이에서, 가피가"라고 적혀 있습니다. 편지 봉투는 열려 있지만, 그 내용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편지 봉투 옆에는 빛바랜 작은 사진 한 장이 놓여 있는데, 어른이 된 두 남자가 함께 서서 해변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인 겁니다. 한 남자는 츠요시처럼 보이고, 다른 한 남자는 가피처럼 보이는 거죠.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다시 츠요시의 얼굴로 돌아옵니다. 그는 편지와 사진을 보며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마치 가피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때 츠요시의 나지막한 독백이 흘러나옵니다.

 

"어쩌면 무지개 물고기는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그 여름의 모험과 함께 했던 친구가 바로 저의 무지개였으니까요. 여전히 그는 저의 가장 맛있는 고등어 통조림입니다."

 

이러한 엔딩은 두 소년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우정을 이어가고 있음을 암시하여 관객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무지개 물고기를 찾는 과정보다 그 우정 자체가 진정한 보물이었음을 강조하며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길 것 같습니다.

 

일본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 시간 속에 박제된 순수한 빛깔의 추억

결론: 나의 다짐

이 영화는 제게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현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지혜를 선물했습니다.

 

첫째, '가치'의 기준을 외부의 시선이 아닌 저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고등어 통조림이 가피에게는 하와이 음식처럼 느껴지고, 무지개 물고기가 꼭 실재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듯이, 저 역시 세상이 말하는 '좋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쫓기보다는 저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둘째, 타인과의 관계에서 순수한 '연결'의 힘을 믿으려고 합니다. 어른이 될수록 관계가 복잡해지고 계산적이 되기도 하는데, 가피와 츠요시처럼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순수한 우정의 가치를 잊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 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추억을 소중히 간직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이 언젠가 돌아보게 될 '그 여름'처럼 빛나는 추억이 될 수 있도록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매일매일이 소박할지라도,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작은 행복들을 놓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