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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인생 이야기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벽 너머의 비명, 무관심의 가장 큰 공포

by 영화감있게 살자 2025. 9. 28.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벽 너머의 비명, 무관심의 가장 큰 공포

서론: 인상비평

공포는 비명 소리나 잔혹한 시각적 묘사에서만 오는 것이 아님을, 저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바로 옆에 자리 잡은 한 장교 가족의 완벽하고도 평화로운 일상을 그린 이 영화는, 제가 알고 있던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방식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우리는 카메라가 보여주는 잔혹함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 영화는 그 잔혹함을 단 한 장면도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관객으로 하여금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게 만들고, 그 소리가 끔찍한 실체임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상상을 초월하는 지독한 공포를 안겨줍니다. 밝고 화사한 정원과 활기 넘치는 가족의 모습 뒤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과 총성, 기계음은 저의 귀를 괴롭혔고, 동시에 '내가 과연 저 가족과 무엇이 다를까?'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며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짙은 어둠을 드리웠습니다.

 

줄거리

영화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사령관 루돌프 회스와 그의 아내 헤트비히, 그리고 다섯 아이가 수용소 담장 바로 옆에 위치한 그림 같은 집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립니다. 그들의 집은 아름다운 정원과 수영장, 온실까지 갖춘 그야말로 평화로운 보금자리입니다. 헤트비히는 이 정원을 가꾸는 데 열중하고,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뛰어놀거나 수영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루돌프는 출근해서는 강제 수용소 운영에 몰두하지만, 퇴근 후에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죠.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벽 너머의 비명, 무관심의 가장 큰 공포

 

그러나 이 평화로운 일상 속에는 극도의 비극이 숨어 있습니다. 수용소 담장 너머에서는 연기와 불꽃이 피어오르고, 밤낮으로 비명 소리와 총성,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신음, 그리고 기차가 도착하고 짐칸이 열리는 소리, 소각로가 돌아가는 굉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루돌프와 헤트비히, 아이들은 이 모든 소리를 마치 배경음악처럼 여기며 살아갑니다. 헤트비히는 수용소에서 들어온 귀금속이나 의류를 아무렇지 않게 착용하고, 심지어 강제 노역자들을 집안의 하인처럼 부리며 착취합니다. 루돌프는 수용소의 효율적인 학살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만들 궁리만 할 뿐, 그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에는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아요.

 

영화는 이처럼 지옥의 문턱에서 피어나는 천국 같은 일상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관객들로 하여금 직접적으로 보지 않아도 그 모든 끔찍한 진실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 가족은 의식적으로 벽 너머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일상 속으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느낀점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넘어, '인간이 어디까지 무관심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섬뜩한 통찰을 얻었습니다. 벽 너머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학살의 현장이 펼쳐지는데도 그들은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자신들의 일상을 유지합니다. 특히 헤트비히가 정원 가꾸기에 몰두하거나,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깔깔거리는 장면 뒤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비명 소리는 그 어떤 시각적 폭력보다도 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공포를 유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 영화는 '공포를 유발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태도'가 오히려 가장 큰 공포라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이 영화가 보여주는 공포의 본질은 '악의 평범성'입니다. 쉬거 같은 절대 악이 아니어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 타인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고 '선 긋기'를 할 때, 그 악은 더욱 깊숙이 침투하여 가장 끔찍한 형태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저 자신은 과연 이들에게서 자유로운가,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부당함과 고통 앞에서 저는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지 않았는지 되묻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어떠한 도덕적 판단도 강요하지 않지만, 보는 내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자기성찰의 시간을 안겨줍니다. 이 강렬한 사운드 디자인은 저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을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습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벽 너머의 비명, 무관심의 가장 큰 공포

내가 감독이라면 이렇게 끝내겠다

영화의 실제 엔딩은 루돌프 회스가 과거 강제 수용소의 복도를 걸어가다가 구토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이후 카메라가 현대의 아우슈비츠 박물관을 비추며 그의 행동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굉장히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저도 이 엔딩이 탁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만약 제가 감독으로서 이 영화의 메시지를 조금 다르게 강조하고 싶다면, '무관심이 어떻게 내면을 침식하는지'에 더 집중해서 다음과 같은 엔딩을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영화의 후반부는 루돌프 회스가 강제 수용소에서 다른 곳으로 전근 발령을 받는 시점과 일치합니다. 가족들은 떠나야 하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루돌프는 사실 수용소에서 보직을 변경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가족들이 새로 배정받은 집으로 이사를 와서 짐을 푸는 평범한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이전 집처럼 넓고 좋은 집은 아니지만, 여전히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예요.

 

카메라는 새로 이사 온 집의 아이 방에 홀로 앉아 조용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막내딸에게로 향합니다. 그녀는 무심한 얼굴로 자신의 인형들을 작은 상자에 밀어 넣거나, 한 줄로 세워놓고 뭔가를 지시하는 듯한 시늉을 합니다. 이때, 창문 밖에서 아주 희미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가 배경에 깔립니다. 하지만 이전처럼 끊임없이 비명이 들리거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화면이 서서히 막내딸의 얼굴에 클로즈업되고, 그녀의 눈빛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멍하니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합니다. 마치 그녀의 내면이 벽 너머에서 들리던 모든 소리와 함께 공허해진 듯한 모습이에요. 내레이션도, 어떤 설명도 없이, 그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와 아이의 무감각한 얼굴만으로 영화를 끝내는 겁니다.

 

이는 '관심의 존(Zone of Interest)'이 바뀌었을 뿐, 그 무관심이 한 아이의 내면을 어떻게 비우고 침식시켰는지, 그리고 비극이 어떤 식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무의식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지를 암시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상실감과 함께 더욱 불길한 여운을 남길 것 같습니다.

 

결론: 나의 다짐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벽 너머의 비명, 무관심의 가장 큰 공포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영화관을 나서면서도 쉬이 떨쳐낼 수 없는 묵직한 돌을 제 마음에 남겼습니다. 이 영화가 준 가장 큰 깨달음은 '무관심'이 얼마나 강력하고 위험한 형태의 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어요.

 

첫째, 저는 의식적으로 주변의 '소음'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할 겁니다. 불편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소리에도 귀를 닫지 않고,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헤아리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거예요. 쉽지 않은 일임을 알지만, 무관심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작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나만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것에만 몰두하여 주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도록 경계하겠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나 개인적인 행복 추구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희생 위에 쌓아 올려진 것이 아닌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회적 책임과 연대를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의 비극을 단순히 과거의 일로만 치부하지 않고,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반복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어둠임을 상기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 어둠이 다시는 우리 사회를 잠식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