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와 인생 이야기

고전영화 [황무지] 순수와 잔혹 사이, 아메리칸 드림의 허무한 발자취

by 영화감있게 살자 2025. 11. 8.

 

고전영화 [황무지] 순수와 잔혹 사이, 아메리칸 드림의 허무한 발자취

서론: 인상 평가

'황무지'라는 제목은 듣는 순간부터 무언가 메마르고 황량한 풍경과 함께, 인간 내면의 공허함을 연상시켰습니다. 테런스 맬릭 감독님의 이 1973년작 데뷔작은 1950년대 후반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10대 연쇄살인범 커플, 찰스 스타크웨더와 캐롤 앤 퍼게이트의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끔찍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서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한 소녀의 덤덤한 내레이션을 통해 마치 잔혹한 동화를 보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로드무비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깔린 폭력성과 비극적인 허무함은 관객인 저에게 깊은 충격과 함께 오랜 사색을 안겨주었습니다. 인간의 존재론적인 고독감과 사회가 만들어낸 환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서정적인 영상 언어로 포착해낸,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걸작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줄거리

영화는 1950년대 후반 미국 사우스 다코타 주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15세의 감수성 풍부한 소녀 홀리 사지스(시시 스페이식 분)와, 그녀보다 10살 많은 매력적이지만 불안정한 청년 키트 캐러더스(마틴 신 분)입니다. 키트는 쓰레기 수거부로 일하며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인물로, 제임스 딘을 연상시키는 외모와 거친 매력으로 홀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홀리는 엄마 없이 살아가며 음악 레슨을 받고, 물고기와 강아지를 키우는 등 평범하지만 약간은 외로운 일상을 보내는 소녀입니다.

 

키트와 홀리의 사랑은 순수하고 낭만적으로 시작되지만, 홀리의 아버지가 둘의 관계를 반대하면서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홀리의 아버지는 키트가 자신의 집 앞에 세워둔 홀리의 강아지를 쏘아 죽이며 둘의 관계를 끊으려 하고, 이에 분노한 키트는 홀리의 아버지를 총으로 쏘아 죽입니다. 이 첫 살인을 시작으로 키트와 홀리는 무모하고 충동적인 도주극을 시작합니다.

 

둘은 미국 황무지를 가로지르며 자신들을 뒤쫓는 경찰을 피해 숨어 다닙니다. 그들의 도주 과정에는 여러 차례의 살인이 이어집니다. 키트와 홀리는 경찰에게 쫓기면서도 자신들만의 은신처를 만들고, 훔친 차량으로 여행을 계속하며 마치 로맨틱한 소풍을 온 연인들처럼 행동합니다. 홀리는 마치 이 모든 상황을 낭만적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기며 덤덤하게 내레이션을 이어갑니다. 그녀의 내레이션은 때로는 순수하고,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현실과 괴리된 감정을 드러내며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수많은 경찰의 추적 끝에 결국 두 사람은 붙잡힙니다. 체포되는 순간에도 키트는 체포하러 온 사람들에게 농담을 건네고, 사인 요청에 응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입니다. 홀리는 살인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지만, 키트와의 여정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범행에 연루됩니다. 영화는 결국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의 동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한 젊은 커플의 무의미하고 허무한 도피극과 파국을 보여주며 마무리됩니다.

 

느낀점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아름다운 풍경 속에 감춰진 인간의 잔혹성'이 얼마나 섬뜩한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테런스 맬릭 감독은 광활하고 아름다운 미국의 자연을 배경으로 키트와 홀리의 도피극을 그리지만, 그들의 행동은 잔혹하고 무의미한 폭력으로 가득합니다. 그 대비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순수한 폭력'이라는 말이 존재한다면 이 영화를 통해 목격한 것 같았어요.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것은 홀리 사지스의 덤덤하고 무감각한 내레이션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살인 행위를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혹은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서술합니다. 이러한 홀리의 시선은 영화의 폭력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폭력에 대한 '무감각'이야말로 가장 큰 비극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내레이션 속에서 '살인의 동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점차 무의미해지고, 그저 허무함만이 남는 듯했습니다. 그녀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심리'와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싫은 심리'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는 인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는 또한 '아메리칸 드림'이나 '젊음의 낭만'이라는 포장지 아래에 숨겨진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듯했습니다. 언론이 키트를 '낭만적인 악당'처럼 포장하는 모습은 폭력을 낭만화하는 사회의 위험성을 보여주었죠. 감독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서정적인 음악을 통해 도피극을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게 연출했지만, 결국 키트와 홀리가 마주하는 것은 황량한 '황무지'뿐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들의 무의미한 여정과 홀리의 공허한 내레이션이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남아,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허무한 환상에 대한 깊은 사색을 안겨주었습니다.

 

내가 감독이라면 이렇게 끝내겠다

테런스 맬릭 감독님의 엔딩은 키트와 홀리가 체포되고, 키트가 사인 요청에 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다가 결국 군인들에게 인계되는 모습으로, 범죄의 허무함과 사회적 무관심을 묵묵히 보여주며 여운을 남깁니다. 이 엔딩은 감독 특유의 냉철하고 철학적인 시선을 잘 드러내며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만약 감독이라면, 그들의 행위가 남긴 '지워지지 않는 흔적'과 그 비극을 '이해하려 애쓰는 후대의 시선'을 통해, 사회에 대한 경고와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더욱 확장하는 엔딩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영화는 키트와 홀리가 체포되고, 홀리가 키트와 다른 차에 태워져 멀어지는 장면까지는 동일하게 가져갑니다. 홀리는 멀어져 가는 키트의 뒷모습을 보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덤덤하게 내레이션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길을 가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그가 왜 그랬는지 모른다.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뒤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시대는 훨씬 더 발전했고, 세상은 풍요로워졌지만, 키트와 홀리가 지나쳤던 황량한 미국 서부의 모습은 여전히 변치 않았습니다. 그때, 한 중년의 여성(홀리 사지스와 비슷한 외모를 지녔고, 어쩌면 홀리의 손녀일 수도 있습니다)이 낡은 차량을 타고 그 황무지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그녀는 차를 멈추고 낡은 캠코더를 꺼내 주변 풍경을 촬영합니다. 그녀의 눈빛에는 이곳의 풍경에 대한 익숙함과 함께,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한 애잔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녀가 촬영하는 곳은 키트와 홀리가 은신처를 만들었던 곳, 혹은 그들이 지나쳤던 작은 마을의 낡은 상점일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캠코더를 켜고, 어린 시절의 홀리가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내레이션을 시작합니다. "여기는 세상이 우리를 잊어버린 곳. 그리고 어떤 이야기가 시작된 곳..."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과거 홀리의 말투와 시선을 따라가며, 이 황무지에 숨겨진 진실을 찾으려는 듯합니다.

 

그때, 그녀의 캠코더 화면에 희미한 글씨가 잡힙니다. 그것은 과거 키트와 홀리가 은신처에 남겨두었던 흔적(가령 나무에 새긴 이니셜, 혹은 낙서)일 수도 있고, 혹은 총에 맞아 쓰러진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 흘린 듯한 낡은 유품일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그 흔적을 응시하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한 방울 흘립니다. 그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과거의 비극에 대한 공감, 그리고 그 비극을 이해하려 애쓰는 인류의 오래된 노력처럼 느껴집니다.

 

마지막 컷은 홀리와 똑같은 표정을 한 중년 여인이 캠코더를 들고, 키트와 홀리가 거닐었던 황무지를 배경으로 서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듯한 이미지 위로 다음과 같은 자막이 깔립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가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어리석음과 외로움을 잊는다면." 이러한 엔딩은 키트와 홀리의 이야기가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사회의 병폐를 끊임없이 경고하고, 그 비극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잔혹했던 과거가 현재에 남긴 지워지지 않는 흔적과, 그 흔적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려는 희미하지만 묵직한 희망을 담아낼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감독에 대해 (테런스 맬릭 감독)

제가 생각하는 테런스 맬릭 감독님은 '시적인 영상미와 철학적인 사유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는 시네아스트'입니다. '황무지'에서 보여주듯이 그의 연출은 대사와 서사보다는 이미지와 음악, 그리고 인물들의 내레이션을 통해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는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폭력과 고뇌를 대비시키며,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과 상실감을 탁월하게 포착해냅니다. 불필요한 설명을 제거하고, 오직 인물들의 감정과 풍경을 통해 관객 스스로가 서사를 채워나가도록 유도하는 그의 방식은 독보적입니다. 테런스 맬릭 감독님은 영화를 단순히 오락이 아닌,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명상적 경험'으로 승화시키는,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영화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이 영화가 나에게 미친 영향

'황무지'는 제게 '인간 내면의 순수함과 잔혹함의 공존' 그리고 '폭력의 허무함'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깨닫게 한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인간의 어두운 면과, 특별한 목적 없이 행해지는 폭력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과 사회를 파괴할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 영화가 제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세상의 어떤 비극도 낭만화하거나 미화해서는 안 되며, 그 안의 인간 본성을 직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심어주었다는 점입니다. 때때로 제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려 하거나, 미디어의 포장에 현혹되려 할 때, 저는 아름다운 황무지 위를 헤매던 키트와 홀리의 무의미한 도피극과 그 뒤에 숨겨진 공허함을 떠올릴 겁니다.

 

그리고 제가 마주하는 모든 인간 관계와 사회 현상 속에서 겉모습만을 보고 쉽게 판단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과 인간적인 고뇌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폭력과 허무함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황무지'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은 의미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영원한 질문을 던지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