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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인생 이야기

영화 [태어나기는 했지만] 세상을 다 아는 아이들과 고뇌하는 어른들의 유쾌한 비애

by 영화감있게 살자 2025. 11. 7.

영화 [태어나기는 했지만] 세상을 다 아는 아이들과 고뇌하는 어른들의 유쾌한 비애

 

서론: 인상 평가

'태어나기는 했지만'이라는 제목은 듣는 순간부터 무언가 해맑으면서도 동시에 체념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님의 이 1932년작 무성 영화는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영화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형제가 아버지를 통해 어른들의 세상이 얼마나 비겁하고 위선적인지 깨달으면서 겪는 혼란과 성장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려냅니다.

 

오즈 감독님의 초기 걸작이자 '일본 영화계의 첫 사회적 리얼리즘 작품'이라 칭송받기도 하는 이 작품은, 과장된 대사나 극적인 연출 없이 오직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과 행동, 그리고 아버지의 씁쓸한 표정만으로 압도적인 사실감을 만들어냈습니다. 거기서 자연스러운 웃음이 배어나오고, 코믹하면서도 인간성이 넘치는 오즈 감독님 특유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어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유쾌하고도 쓸쓸한 여운을 남긴,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걸작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줄거리

영화는 도쿄 교외로 이사 온 요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아빠 켄노스케(사이토 타츠오 분)는 직장 상사인 이와사키(스가와라 히요시 분)가 머무는 곳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그의 두 아들, 큰 형(토쿠칸 코조 분)과 작은 동생(쿠보 타케시 분)은 동네에 적응하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어 하지만, 새롭게 전학 온 학교에서 겪는 갈등과 동네 아이들의 괴롭힘으로 처음에는 학교도 가지 못하고 엇나가기도 합니다.

 

아빠 켄노스케는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회사로 출근하고, 집에 오면 아이들에게는 자상한 아빠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는 퇴근 후 아이들과 함께 힘겨루기를 하거나 장난을 치며 평범한 아빠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와사키 상사의 집에서 상사가 아빠 켄노스케의 집으로 모두를 초대하여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집에서 직접 찍은 홈 무비 영상을 상영하는 자리가 마련됩니다. 아이들은 영상을 보며 즐거워하다가, 뜻밖의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영상 속에서 그들의 자랑스러웠던 아빠 켄노스케가 상사 이와사키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아첨하며 비위를 맞추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죠.

 

순진했던 아이들은 그 충격적인 광경 앞에서 아빠에 대한 존경심과 환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낍니다. 자신들이 맹목적으로 믿고 따랐던 아빠의 권위가, 상사라는 더 큰 권력 앞에서 아무 힘없이 굴종하는 모습을 보며 형제의 자존심은 크게 상합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즐거워하지 못하고,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먼저 자리에서 박차고 나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형제는 굴욕감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화를 냅니다.

 

아빠가 집에 돌아와도 모른 척하고 대들며, 자신들의 눈에 비친 아빠의 '비겁한' 모습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합니다. 이에 아빠 켄노스케는 "어른들의 세상은 아이들의 세상과는 다르다"고 설명하며, 사회생활의 냉혹한 현실과 살아남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어른들의 비애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언젠가 너희들도 커서 같은 처지에 놓이면 그 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조용히 타이릅니다.

 

아이들은 아빠의 설명과 아빠의 지친 모습 앞에서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 시무룩한 표정으로 눕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은 아빠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인사를 건네며 다시 평범한 일상을 시작하고, 아빠는 힘겹게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느낀점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아이의 시선으로 본 어른들의 세상이 얼마나 유쾌하면서도 슬픈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눈에는 아빠가 상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첨하는 모습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비겁한' 행위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느꼈을 배신감과 혼란은, 어린 시절 저 또한 어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느꼈던 감정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웃기면서도 가슴 아픈 공감으로 다가왔습니다.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것은 '성장'이라는 과정이 단순히 키가 크고 지식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복잡성과 부조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아빠에게 격렬하게 반항하다가 결국 조용히 체념하며 현실을 수용하는 모습은, 순수함을 잃어가는 동시에 어른들의 고뇌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는, 이른바 '어른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어 저에게 큰 깨달음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들의 시무룩한 표정 속에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환상이 깨진 슬픔과 함께, 자신들도 언젠가는 저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뒤섞여 있는 듯했습니다.

 

이 영화는 또한 '사회적 계급과 권력 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아빠 켄노스케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억지로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모습은, 개인의 존엄성보다는 생존을 우선해야 하는 당시 사회의 현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비굴함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오즈 감독은 이러한 비판을 신파적이나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어 오히려 더 깊은 여운과 공감을 만들어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씁쓸한 미소가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남아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내가 감독이라면 이렇게 끝내겠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님의 엔딩은 아이들이 아빠의 설명을 듣고 현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삶의 순리와 체념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 엔딩은 오즈 감독님의 영화 철학을 완벽하게 담고 있지만, 제가 만약 감독이라면, 그 체념 속에서도 '아이들의 순수한 질문이 현재에도 이어져 작은 변화를 모색하려는 희미한 씨앗'을 보여주는 엔딩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영화는 아이들이 아빠의 설명을 듣고 현실을 수용하며 침묵하는 장면, 그리고 아빠가 다시 출근길에 오르는 모습까지는 동일하게 가져갑니다. 아이들은 다음날 아침 평소처럼 아빠에게 인사하고, 아빠는 힘겹게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하지만 이때, 두 형제 중 동생이 묻습니다. "형, 아빠는 이제 안 괜찮을까? 나는 이제 아빠가 이해가 돼." 큰 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 우리도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야. 하지만..." 하고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리고 형제는 다시 장난을 시작하며 아빠에게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몇십 년 후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두 형제는 이제 중년이 되어 있습니다. 한 명은 아버지 켄노스케처럼 어딘가에 소속되어 삶을 꾸려나가고 있지만, 그의 표정에는 젊은 시절의 분노와 순수함은 희미해지고 아버지와 같은 비애와 체념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은 아버지와는 다른, 조금 더 자유롭고 unconventional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작은 학교의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에게 세상을 가르치거나, 혹은 작은 공방에서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예술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자리, 마치 어린 시절의 자신들처럼 장난기 넘치지만 사회의 권위 앞에서 순응을 강요받는 아이들의 영상을 보게 됩니다. 영상을 보던 두 형제의 얼굴에는 각자의 인생에서 겪었던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합니다. 아버지처럼 순응하며 살았던 형은 한숨을 쉬고, 다른 한 명은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무언가 결심한 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 두 형제가 함께 앉아 탁자 위에 놓인 오래된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봅니다. 그 사진은 어린 시절의 자신들과 아버지 켄노스케가 함께 찍은 홈 무비의 한 장면을 캡처한 것입니다. 아버지 켄노스케가 상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입니다. 사진을 본 두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 웃음 속에는 과거의 비애와 체념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온 삶과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어른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이때, 형제 중 한 명이 말합니다. "아빠, 우리 이제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춘 후,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안아줍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무언가를 속삭입니다. 그 속삭임 속에는 "너희들까지는 그러지 말렴"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마지막 컷은 세대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비슷한 세상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 위로, 방금 그들이 보았던 오래된 사진 속 '고개 숙인 아버지'의 모습이 희미하게 오버랩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빠와는 달리 밝게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엔딩은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삶은 고되고, 부모 세대의 비애와 체념은 계속되지만, 그 속에서도 작은 변화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다음 세대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희미하지만 따뜻한 희망을 암시합니다. 단순히 체념하는 것을 넘어, 다음 세대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전하려는 작은 몸짓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여운을 남길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감독에 대해 (오즈 야스지로 감독)

제가 생각하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님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장 보편적인 삶의 진실과 인간 존재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통찰력'을 지닌 거장입니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 보여주듯이 그의 연출은 고정된 카메라, 로우 앵글, 그리고 인물들의 얼굴과 미묘한 감정선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파고듭니다. 그는 과장된 드라마나 극적인 사건 없이도, 가족의 해체, 세대 간의 단절, 그리고 삶의 허무함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들을 담담하게 그려내어 관객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그의 영화는 마치 '삶의 한 단면'을 묵묵히 관찰하는 듯한 인상을 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가족 관계를 성찰하게 만듭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님은 화려한 기교 없이도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삶의 순리와 죽음의 의미까지도 온화한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를 초월하는 진정한 영화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이 영화가 나에게 미친 영향

'태어나기는 했지만'은 제게 '성장이라는 것의 쓸쓸한 이면'과 '어른들의 세상이 강요하는 비애'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깨닫게 한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순수했던 아이들이 사회의 부조리와 어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깨달으면서 겪는 상실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 영화가 제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세상이 아무리 냉혹하고 불합리하더라도, 우리 안의 순수한 가치와 질문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심어주었다는 점입니다. 때때로 제가 사회생활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비겁한 선택을 해야 할 때, 저는 아버지의 굴종적인 모습을 보고 눈물 흘리던 어린 두 형제의 순수한 눈빛을 떠올릴 겁니다.

 

그리고 제가 마주하는 모든 관계와 상황 속에서 겉모습만을 보고 쉽게 판단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려 노력하며, 때로는 불합리한 사회적 규칙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은 단순한 코미디 영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은 의미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영원한 질문을 던지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