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 검은 섬에 피어난 하얀 목숨들, 끝나지 않는 기억의 메아리](https://blog.kakaocdn.net/dna/dwYPVi/dJMcadtvTom/AAAAAAAAAAAAAAAAAAAAADOJmuej1yg7__8ujX2WWWMEvTNxTOkFk5ZXlm-nwSXb/img.webp?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4514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QiJ%2FHpqRBtSaiE%2Fnw3khO7mqJtA%3D)
서론: 인상 평가
'지슬'은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를 뜻한다고 합니다. 감자처럼 투박하지만 굳건하게 생명을 지탱해주었던 삶의 한 조각을 연상시키는 이 제목은, 오멸 감독님의 영화가 제주 4.3 사건이라는 아픈 역사를 어떻게 그려낼지 미리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흑백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마치 한 폭의 오래된 기록 사진을 보는 듯한 감각을 주면서도, 당시의 참혹했던 현실을 오히려 더 생생하게 전달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제주도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비극 앞에서 겪는 공포와 순수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짓밟는 무자비한 폭력을 지극히 담담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는 방식은 저에게 커다란 충격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슬픈 여운을 남겼습니다. 어쩌면 미처 끝나지 않은 역사의 아픔을 위로하고 기억해야 할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걸작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줄거리
영화는 1948년 11월, 제주도에 불어닥친 거대한 비극, 4.3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제주섬에는 "해안선 5km 밖의 모든 사람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폭도'로 몰리게 된 마을 사람들은 토벌대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깊은 산속의 '궤'라고 불리는 천연 동굴(제주 방언으로 암반 사이 공간)로 피신합니다.
동굴 속에 숨어든 120여 명의 주민들은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서로에게 감자를 나눠 먹으며 평범한 가정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집에 두고 온 돼지나 자식의 혼사에 대한 소박한 걱정들은,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과는 대비되어 역설적인 유머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순박하고 한가로운 대화는 잠시뿐, 곧 토벌대의 무자비한 폭력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토벌대는 주민들을 색출하기 위해 마을을 불태우고, 무고한 사람들을 끔찍하게 학살합니다. 영화는 뿌연 연기가 가득한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배를 씹어 먹는 군인들의 모습, 그리고 잔혹한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의 광기와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동굴에 숨어있던 주민들은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발각될 위기에 처하고, 고춧가루를 이용해 연기를 피우며 저항하려 애쓰기도 합니다.
결국 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 앞에서 주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마주합니다. 아내와 헤어진 병호, 가족이 없어 돼지 하나에 의지하던 아저씨 등 평범한 이웃들이 이름 없는 희생자가 됩니다. 영화는 살벌한 학살 장면과 인간적인 연대 속에서 피어나는 유머를 교차하며, 비극 속에서도 인간적인 존엄을 잃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묵묵히 보여주며 마무리됩니다.
느낀점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하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끈질기게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는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제주 4.3 사건이라는 너무나 아픈 역사를, 감독은 불필요한 과장이나 신파적인 연출 없이 담담하게 그려내어 오히려 더 큰 비극의 무게를 느끼게 했습니다. 흑백 화면은 모든 것을 검게 물들였던 그 시대를 상징하는 듯했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주민들의 소박한 대화나 작은 웃음들은 비극적인 현실과 대비되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것은 바로 '토벌대의 잔혹함'과 '주민들의 순수함'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폭력을 휘두르는 군인들의 모습은 공포영화의 괴물보다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관념 속의 악마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했던 악마를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반면에 동굴 속에서 감자를 나눠 먹으며 집에 두고 온 돼지를 걱정하거나,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는 주민들의 모습은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한순간에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저에게 잊혀서는 안 될 역사의 진실을 각인시켰습니다.
이 영화는 또한 '역사란 비극이자 희극'이라는 메시지를 독특한 리듬으로 전달합니다. 살벌한 장면과 코믹한 장면이 교차하면서, 무거운 역사를 단지 슬퍼하는 것을 넘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합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흑백 화면 속에서 살아서 움직이던 인물들의 얼굴과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묵묵히 기억해야 할 우리 모두의 책임감이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남아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내가 감독이라면 이렇게 끝내겠다
오멸 감독님의 엔딩은 생존한 주민들이 다시 산속으로 향하는 불확실한 발걸음과 함께 비극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져 있음을 암시하며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 엔딩은 그 자체로 당시 역사의 아픔을 잘 담고 있지만, 제가 만약 감독이라면,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와 끝나지 않은 기억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내며, 동시에 '치유와 화해의 작은 씨앗'을 심어주는 엔딩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영화는 살아남은 주민들이 다시 산속으로 향하는 장면까지는 동일하게 가져갑니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절망적이지 않고, 희미하게나마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품고 있습니다. 그들이 걸어가는 산길 아래로, 먼발치에는 재가 되어버린 마을의 흔적과 함께, 아직 불씨가 살아있는 듯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그리고 화면은 현재 시점으로 전환됩니다. 70여 년이 흐른 2025년의 제주도를 비춥니다. 과거 주민들이 피신했던 '궤' 동굴 앞에는 작은 추모비와 함께 헌화가 놓여 있습니다. 한 노파가 그 추모비 앞에서 손주들에게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 노파는 영화 속에서 굴 속에 숨어 있던 어린아이 중 한 명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그들의 후손일 수도 있습니다.
노파는 손주들에게 담담하게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손주들의 얼굴에는 처음에는 의아함이, 이내 깊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이해가 교차합니다. 손주 중 한 명은 노파에게 묻습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그때 안 무서웠어요?" 노파는 손주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합니다. "무서웠지. 하지만 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단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그때,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옵니다. 그들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섞여 있으며, 손에는 작고 소박한 흰 꽃들을 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굴 앞에서 잠시 묵념하고, 추모비에 꽃을 놓습니다. 그들 중에는 당시 '토벌대'에 속했던 이들의 후손들도 있을 수 있고, 혹은 이념을 넘어 화해와 용서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표정에는 죄책감과 함께 치유와 화해를 갈망하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모든 사람들이 동굴 앞에서 서로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해와 평화를 상징하는 희미한 미소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미소 위로, 흑백 필름 속 주민들이 동굴에서 함께 감자를 나눠 먹으며 부르던 제주 민요 '오돌또기'의 구슬픈 노랫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옵니다. 이러한 엔딩은 제주 4.3 사건이라는 비극적인 역사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 살아 숨 쉬며, 그 기억을 통해 용서와 화해, 그리고 미래의 평화를 향한 작은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하며, 진정한 치유와 끝나지 않은 역사의 의미에 대한 희망적인 여운을 남길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감독에 대해 (오멸 감독)
제가 생각하는 오멸 감독님은 '지역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데 탁월한 독립영화의 거장'입니다. '지슬'에서 보여주듯이 그는 제주 4.3 사건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개인의 고통과 인간적인 삶의 모습에 집중하여, 그 어떤 장치보다도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의 연출은 흑백 화면과 느린 호흡, 그리고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통해 화려한 시각적 효과 없이도 관객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역사란 비극이자 희극'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도 인간 본연의 순수함과 유머를 놓치지 않는 시선은 그의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오멸 감독님은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기억해야 할 우리 모두에게 깊은 성찰을 던지는, 진정으로 사려 깊고 독창적인 영화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이 영화가 나에게 미친 영향
'지슬'은 제게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과 '인간성의 양면성'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깨닫게 한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이념이나 폭력도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짓밟을 수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강인한 생명력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 영화가 제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단순히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고 그 아픔을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진정한 자세'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심어주었다는 점입니다. 때때로 제가 과거의 아픈 역사나 사회적 비극에 무심해질 때, 저는 동굴 속에서 감자를 나눠 먹으며 서로를 위로하던 제주도 주민들의 순수한 얼굴을 떠올릴 겁니다.
그리고 제가 마주하는 현실 속에서도 편견이나 증오심으로 다른 이를 재단하기보다, 인간적인 연대와 상호 이해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작은 힘을 보태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슬'은 단순한 역사 영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은 의미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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