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와 인생 이야기

프랑스영화 [쁘띠 마망] 잊혀진 시간 속, 엄마를 다시 만나는 마법 같은 여름날

by 영화감있게 살자 2025. 10. 28.

프랑스영화 [쁘띠 마망] 잊혀진 시간 속, 엄마를 다시 만나는 마법 같은 여름날

서론: 인상 평가

'쁘띠 마망'이라는 제목은 프랑스어로 '작은 엄마'를 뜻하며, 이 영화의 핵심을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아련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셀린 시아마 감독님의 이 작품은 화려한 CG나 복잡한 서사 대신, 순수한 아이들의 시선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가장 따뜻하고 비밀스러운 만남을 그려냅니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긴 엄마와 함께 시골집으로 온 어린 소녀 '넬리'가, 시간 여행 같은 경험을 통해 엄마의 어린 시절을 직접 마주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적 상상을 넘어,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 그리고 상실감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너무나도 섬세하게 포착해냅니다.

 

마치 한 편의 짧은 시를 읽는 듯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그 안에 담긴 깊은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제 마음을 따뜻하게 물들였습니다. 모든 세대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지만 위대한 걸작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줄거리

영화는 8살 소녀 넬리(조세 톨리어 분)가 어머니 마리옹(니나 멜리사 분), 아버지(스테판 메츠게르 분)와 함께 외할머니의 빈집으로 오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가족은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입니다. 넬리는 슬픔에 잠긴 어머니 마리옹의 곁에서 말없이 그녀를 위로하려 애쓰지만, 어머니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상실감에 압도되어 이내 짐을 싸서 집을 떠나버립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떠남과 외할머니의 부재 속에서 넬리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녀는 엄마가 어렸을 때 지었던 나무집을 찾아 숲 속을 헤매다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소녀 마리옹(가브리엘 산드 분)을 만나게 됩니다. 넬리보다 조금 더 강단 있어 보이는 이 소녀는 자신도 넬리처럼 나무집을 짓고 있었다고 말하며 넬리를 집으로 초대하죠. 넬리는 이 소녀가 바로 자신의 어머니 마리옹의 어린 시절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두 소녀, 넬리와 어린 마리옹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서로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즐겁게 놀며 특별한 여름날을 보냅니다. 넬리는 어린 시절 엄마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엄마의 감정과 두려움을 이해하게 됩니다. 어린 마리옹은 커서 어떤 엄마가 될지 걱정하지만, 넬리는 엄마의 이야기를 해주며 그녀를 안심시키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줍니다. 그녀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외할머니를 추억하며 애도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넬리는 엄마가 자신처럼 평범한 아이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엄마 또한 자신만의 상처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두 소녀는 서로에게 감사와 작별 인사를 나눕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넬리의 곁에 어머니 마리옹이 돌아와 있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며 그 짧은 여름날의 마법 같은 만남을 통해 얻은 깊은 이해와 유대감을 확인합니다. 넬리가 성인이 된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자, 엄마 역시 넬리를 "넬리"라고 부르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미소를 지으며 마주 보고 서 있는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느낀점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부모도 한때는 아이였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가장 따뜻하고 아련하게 깨달았습니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그리고 자신의 슬픔을 아이에게 말할 수 없는 어른의 고독을 넬리는 엄마의 어린 시절을 만나 직접 위로하고 공감해줍니다. 이 상호적인 치유의 과정은 제가 평소 부모님을 대하는 방식과 저의 어린 시절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님의 어떤 모습들이 사실은 그들 또한 어렸을 때 가졌던 상처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영화의 '마법'이 결코 요란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넬리가 숲 속에서 어린 마리옹을 만나는 순간부터 두 소녀의 관계는 그 어떤 놀라움이나 의심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마치 아이들이 상상의 친구를 만나듯,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부드럽게 지워지고 오직 '감정적인 진실'만이 남는 듯했습니다. 이런 절제된 연출이 오히려 이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소녀가 나누는 사소한 대화, 나무집 만들기, 그리고 팬케이크를 나눠 먹는 소박한 일상의 순간들이 쌓여 깊은 유대감과 치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이 영화는 또한 '여성의 연대'를 세대를 초월하여 그려냅니다.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딸로 이어지는 세 여성의 삶과 감정선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잔잔하게 보여주죠. 넬리와 어린 마리옹, 그리고 성인 마리옹의 존재를 통해 상실감과 슬픔,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결코 혼자 감당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위로를 전해주는 듯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넬리와 엄마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제 마음속에 남아 따뜻한 온기와 함께 진정한 이해의 의미를 되새겨주었습니다.

 

내가 감독이라면 이렇게 끝내겠다

셀린 시아마 감독님의 엔딩은 넬리와 성인 마리옹이 서로를 응시하며 말없이 깊은 이해를 나누는 장면으로, 고요하지만 강력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 엔딩은 영화의 섬세한 톤과 메시지를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만약 감독이라면, 그 마법 같은 만남의 '영원한 흔적'이 현재의 일상 속에 좀 더 시각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새로운 생명'과 연결되는 엔딩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영화는 넬리와 성인 마리옹이 서로에게 미소 지으며 마주 보고 서 있는 장면까지는 동일하게 가져갑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유대감과 치유의 감정은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뀝니다.

 

넬리의 가족은 다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온 상태입니다. 넬리는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돌아와 자신의 방으로 향합니다. 그녀의 방 한구석에는 어린 마리옹과 함께 만들었던 '작은 나무배'가 놓여 있습니다. 넬리는 그 나무배를 잠시 응시하다가, 그 안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습니다.

 

카메라가 방을 떠나 부엌으로 향합니다. 어머니 마리옹은 과거와는 달리 밝고 편안한 표정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옆에는 이제 넬리의 동생이 된, 아주 어린 아기(혹은 넬리보다 훨씬 어린 자녀)가 유아용 의자에 앉아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마리옹은 아기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작은 나무로 만든 딸랑이를 흔들어줍니다. 그 딸랑이는 어린 마리옹이 넬리에게 주었던, 혹은 그 시절 넬리와 함께 가지고 놀았던 작은 나무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아기는 마리옹이 흔드는 딸랑이를 보며 까르르 웃습니다. 이때 마리옹의 나지막한 독백이 흘러나옵니다. "네가 엄마가 되어서 가장 궁금해했던 것은, '네 엄마가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는가'였지? 이제 너는 그 아이의 이야기가 될 거야."

마지막 컷은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거실 창가에 놓인 화분 속 작은 씨앗에서 초록색 싹이 돋아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넬리가 엄마와 함께 지었던 나무집을 연상시키는 미니어처 나무집이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엔딩은 넬리가 엄마의 어린 시절을 만나 치유받았듯이, 그 사랑과 이해가 미래 세대에게 전달되어 또 다른 형태의 '생명과 관계'를 싹 틔울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엄마를 어린 시절 만나는 마법이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통해 영원히 순환되는 사랑의 기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따뜻한 희망과 함께 더욱 감동적인 여운을 남길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감독에 대해 (셀린 시아마 감독)

제가 생각하는 셀린 시아마 감독님은 '여성 시선(female gaze)'을 영화적으로 가장 섬세하고 우아하게 구현하며, 내면의 깊은 감정을 포착하는 데 탁월한 거장입니다. '쁘띠 마망'에서 보여주듯이 그녀의 영화는 거대한 서사나 극적인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과 관계, 그리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진실에 집중합니다.

 

과장된 대사나 감정적 주입 없이, 침묵과 여백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도록 유도하죠. 특히 아이들의 순수한 시선을 빌려 어른들의 복잡한 감정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은 독보적입니다. 세대를 초월한 여성들의 연대와 공감,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자신만의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미학으로 그려내는 그녀는,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이야기꾼이자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이 영화가 나에게 미친 영향

'쁘띠 마망'은 제게 '부모도 한때는 나처럼 어린아이였다는 깨달음'과 '상실감을 치유하는 관계의 힘'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깨닫게 한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제가 바라보던 부모님이란 존재가 단순한 '어른'이 아니라, 자신만의 꿈과 고민, 그리고 상처를 가진 '개인'이었음을 다시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제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더라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사랑으로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현재의 관계를 더욱 깊이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심어주었다는 점입니다. 때때로 제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오해나 답답함을 느낄 때, 저는 숲 속에서 어린 엄마를 만났던 넬리의 따뜻한 시선을 떠올릴 겁니다.

 

그리고 제가 마주하는 가족 관계 속에서도 불필요한 고집이나 편견을 내려놓고,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쁘띠 마망'은 단순한 동화를 넘어, 모든 세대의 가족 구성원들에게 깊은 위로와 공감, 그리고 관계의 회복을 선물하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