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인상 평가
영화 [너와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 저릿한 아련함과 먹먹함으로 저를 붙잡았습니다. 겉으로는 중학생 두 친구의 순수하고도 투명한 우정 이야기인 듯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스크린 너머로 드리워진 거대한 슬픔의 그림자를 인지하며 숨죽여 보게 됩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한없이 미소 짓다가도, 그들의 미래를 알고 있는 관객만이 느낄 수 있는 죄책감과 안타까움이 교차하여 저의 눈시울을 붉혔어요. 잊고 싶지 않은, 잊혀져서도 안 되는 기억을 가장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어루만지는, 깊은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담아낸 수작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줄거리
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하루 앞둔 2014년 4월 15일을 배경으로, 중학생인 세미와 하은 두 친구의 하루를 따라갑니다. 병원에서도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 세미와 하은은 여느 십대 소녀들처럼 사소한 것에 웃고 떠들며 하루하루를 채워나갑니다. 세미는 미술 시간에 발표할 그림을 그리는 일에 열중하고, 하은은 그런 세미의 곁에서 장난을 치거나 응원을 보내죠. 두 소녀의 대화는 순수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십대 특유의 엉뚱함으로 가득합니다.
하은은 세미의 그림에 대한 의견을 주거나, 학교 선생님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에서도 활기찬 모습을 보입니다. 세미는 늘 하은의 관심과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듯 보이고, 하은은 그런 세미에게 아낌없이 애정을 표현합니다. 친구들끼리 나누는 비밀 이야기,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등이 영화 전반에 흐르며 그들의 찬란한 순간들을 기록합니다. 특히 하은은 자신이 세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고, 세미는 그 그림을 고대합니다.
세미는 자신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투정 섞인 대화를 나누고, 하은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세미를 만날 약속을 잡습니다. 그들은 이튿날 예정된 수학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미래를 약속합니다. 영화는 이토록 소중하고 평범했던 아이들의 마지막 하루를 담담하게 담아냅니다. 어떤 불길한 징조를 강요하지 않고, 그저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그들의 일상에 집중하며 그 찬란했던 시간들을 마치 기억 속에서 다시 꺼내온 듯 스크린에 펼쳐놓습니다.
느낀점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목울대가 간지러웠습니다. 영화 속 아이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그들의 우정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아직 빚바래지 않은 생생한 색감처럼, 두 아이의 관계는 어떤 한 점의 얼룩도 없이 완벽하게 빛났어요. 하지만 관객은 그 빛나는 시간의 끝에 드리워진 비극적인 그림자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아이들의 사소한 장난에도, 풋풋한 사랑 고백에도, 순진한 미래의 약속에도 한없이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가장 아프게 다가왔던 것은, 영화가 그 어떤 극적인 연출이나 과도한 감정 자극 없이도 큰 슬픔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그저 아이들의 활기찬 하루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관객은 상실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음 주에 만나서 이거 하자" "다음에는 꼭 같이 가자" 같은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나 잔인하게 들려왔고, 그들의 작은 약속들이 영원히 지켜질 수 없다는 현실이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혹시 이 아이들에게 조금의 불길한 징조라도 보여서, 그 약속이 무사히 지켜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덧없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자신에게 더 슬픔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사회적 비극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오직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관계'에만 집중함으로써, 잃어버린 생명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더욱 극대화했습니다. 우리가 잃은 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그 찬란했던 순간들, 그들의 미소, 그들의 꿈과 우정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조용히 외치는 듯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기억하기 위한 영화였고, 저에게 그 잊혀져서는 안 될 시간을 다시금 생생하게 살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감독이라면 이렇게 끝내겠다
조현철 감독님의 실제 엔딩은 세미와 하은의 모습을 통해 불안하고 슬픈 여운을 남기며, 관객에게 깊은 사색을 선물합니다. 이 엔딩은 그 어떤 인위적인 위로보다 강력한 슬픔을 전하며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만약 감독이라면, 그들의 빛나던 우정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누군가의 삶 속에서 소중히 기억되고 있다는 '현재의 흔적'을 아주 미묘하게 보여주며, 그들의 존재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싶습니다.
영화는 세미와 하은의 마지막 하루를 그대로 보여주고, 그들이 수학여행에 대한 기대를 품으며 잠드는 모습까지는 유지합니다. 그러나 화면이 전환되어, 수년 후의 현재를 비춥니다. 어느 작은 도시에 세미가 어른이 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하은이 그토록 사랑했던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거나, 혹은 그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방 한쪽 벽에는, 아마 하은이 세미에게 주기 위해 그렸을 법한, 완성되지 않았지만 하은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는 그림 한 장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습니다. 세미는 그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림 속에는 하은이 세미를 생각하며 담았을 법한, 밝고 순수한 사랑의 언어들이 느껴집니다.
이때, 세미는 과거 하은과 나누었던 약속 중 하나인 '우리만의 특별한 인사법' (가령, 특정 손 모양이나 몸짓)을 무의식적으로 혼잣말처럼, 혹은 허공에 대고 작게 해봅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과 그리움이 깃들어 있지만, 동시에 하은과의 우정을 소중히 간직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듯한, 따뜻하고 미묘한 미소가 번집니다. 창밖에서는 새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평범한 일상의 소음이 들리고, 세미는 그림을 다시 한번 지그시 바라보며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엔딩은 비극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잃어버린 친구와의 소중한 추억과 약속이 한 사람의 삶에 영원히 새겨져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사랑을 통해 그 존재는 영원히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위로와 함께, 그들의 우정이 세월을 넘어 어떤 형태로든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하며 관객들에게 더 큰 위안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조현철 감독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조현철 감독님은 인간 내면의 가장 섬세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누구보다 진정성 있게 포착하고, 이를 극도로 절제된 미학으로 스크린에 담아내는 놀라운 역량을 가진 분입니다. 그의 연출은 과장된 드라마나 불필요한 감정 자극을 배제한 채, 오직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를 통해 깊은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너와 나]에서 보여준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비극 앞에서 조심스럽게 존중하는 태도는 그가 얼마나 사려 깊은 연출자인지를 증명합니다. 그는 배우로서도 탁월하지만, 감독으로서도 인간의 취약함과 아름다움을 깊이 이해하고, 관객들이 그 고통과 사랑에 온전히 공감하도록 이끄는 진정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이 영화가 나에게 미친 영향
[너와 나]는 제게 '존재의 소중함'과 '기억의 힘'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준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지나치는 사소한 순간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작은 대화와 약속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남긴 사랑과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요.
이 영화가 제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현재를 더욱 충실하게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진심을 표현해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였습니다. 더 이상 '다음에', '언젠가'로 미루지 않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제가 가진 사랑과 감사를 아낌없이 표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포함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모든 아픔들을, 잊지 않고 그 소중한 순간들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 그것이 이 영화가 저에게 준 가장 큰 울림이자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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